제   목 :[비전을 전파하라 - 신념의 CEO 링컨]요약
작성자 :예수짱  2008-04-03 11:17:48

도널드 필립스 지음
한스미디어 / 2006년 8월 / 246쪽 / 12,000원

▣ 저자  도널드 필립스
역사적 인물을 리더십의 시각으로 재해석하는 데 탁월한 역량을 발휘한 작가이자 강연자이다. 저서로 『마틴 루터 킹의 리더십』, 『미국을 세운 영웅들』 등이 있다.

▣ 역자  이강봉
금호아시아나 인재개발원 원장을 역임했다. 현재 숭실대학교 교육대학원 겸임교수 및 중국 길림성 행정학원 객자교수를 맡고 있다.

▣ Short Summary
미국 하버드 대학은 리더십을 이렇게 정의한다. “리더십이란 도전적인 기회 속에서 비전을 명확히 세워 현실을 돌파하기 위해 조직과 사회를 동원하는 활동이다.” 비전이란 집단이 지향하는 가치이자 그들이 함께 행동하는 이유이다. 명쾌한 비전은 집단의 역량을 결집시키는 힘이 있으며 성장의 원동력이 된다.

비전은 집단 구성원의 심금을 울려 자발적으로 동참하게 할 만큼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 리더의 수많은 역할은 결국 타당한 비전을 수립하여 구성원을 설득하고 비전을 향해 움직이도록 추동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많은 리더들은 타당한 비전을 세우는 첫 단계에서부터 실패하고 만다. ‘3년 내 매출 1조 원 달성’은 경영자로서는 절실한 문제일지 몰라도 일선사원에게는 부담스러운 명령으로밖에 들리지 않을 수도 있다.

‘리더십 교과서’라 불리는 링컨은 비전을 통해 국가의 위기를 돌파한 대표적인 모델이다. 정치무대에서 성공할 만한 배경이라곤 자신의 능력밖에 없었던 링컨은 민주당의 분열로 겨우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다. 더욱이 링컨의 집권을 기점으로 남부 주들은 연방을 탈퇴하기에 이르렀다. 취임 전부터 분열을 조장한 대통령이라는 굴레를 쓰게 된 것이다. 이 모든 악조건 속에서 링컨은 위대한 대통령으로서의 리더십을 발휘했다. 링컨의 리더십은 비전을 제시하고 이를 설득하여 국민 스스로 비전을 향해 움직이게 하는 과정이었다.

링컨은 무엇보다도 먼저 국민의 힘을 하나로 모으는 비전을 수립했다. “이 나라가 새로운 자유 속에서 다시 태어나고, 또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가 이 지구상에서 영원히 존속되도록 하기 위해서.” 게티즈버그 연설을 마무리하는 이 문구는 1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민주정치의 지향을 함축하는 말로서 퇴색되지 않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 링컨이 연설을 통해 주창한 ‘하나된 미국’, ‘자유와 평등’이라는 비전은 미국의 독립선언서에서 나온 것이었다. 국민들이 성경만큼 신봉하고 있던 건국이념을 부활시킴으로써 링컨은 국민들로부터 가슴에서 우러나는 지지를 받았고, 내전이라는 혹독한 시련을 이겨낼 수 있었다.

이 책은 링컨의 대통령 재임 기간을 중심으로 그의 리더십을 다각도로 조명하고 있다. 링컨이 훌륭한 지도자였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아도 왜 위대한 리더인지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이 책은 링컨에 대한 단편적인 정보를 넘어 그가 가장 위대한 리더로 평가받는 이유를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있어, 미국에서 발간된 후 기업 경영자를 위한 추천도서로 해외뿐 아니라 국내에도 꾸준히 소개되어 왔다. 이 책을 통해 ‘입지전적 인물’ 혹은 ‘성인(聖人)’이라는 외피를 걷어내고 미국이라는 거대한 집단의 CEO로서 링컨의 리더십을 체계적으로 조명할 수 있을 것이다.

명쾌한 비전은 변화와 성장의 원동력이 된다. 150년 전에 링컨이 제시한 비전은 강력한 미국의 기틀이 되었고, 지금까지 시대와 국경을 초월해서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정치 리더십은 물론 경영 리더십에도 뚜렷한 역할모델이 없다고 개탄하곤 한다. 이런 현실에서 링컨을 통해 리더십의 기본 원칙을 되새김으로써 새로운 성장 동력을 모색하는 것도 의미 있을 것이다.

▣ 차례
서문

1부 사람에 대한 믿음
1장 현장에서 사람들을 만나라
2장 신뢰로써 사람들의 마음을 붙들어라
3장 설득으로써 이끌어라

2부 고난 앞에서의 품위
4장 최고의 정책은 정직과 성실이다
5장 복수심이나 악의에 지배당하지 마라
6장 용기를 가지고 부당한 비난에 맞서라
7장 역설의 대가가 되어라

3부 비전에 대한 헌신
8장 결단력을 가져라
9장 그들 스스로 이끌게 하라
10장 목표를 세우고 결과에 집중하라
11장 비전을 완수하는 인재를 찾아라
12장 구성원 스스로 혁신을 추구할 수 있도록 하라

4부 열정을 공유하는 커뮤니케이션
13장 대중 연설의 달인이 되어라
14장 부드러운 대화법을 익혀라
15장 끊임없이 비전을 전파하라



서문

우리는 이미 초등학생 시절부터 링컨 대통령의 업적에 대해 들어 알고 있다. 그의 삶의 면면을 다룬 책과 논문들은 지천으로 깔려 있다. 그의 초상은 미국 동전에, 5달러짜리 지폐에, 저축 채권에, 예금증서에 새겨져 있다. 뿐만 아니라 법원, 학교, 공공건물, 주택에도 그의 초상이 새겨져 있다. 그를 다룬 연극, 영화, 텔레비전 프로그램, 잡지 기사, 노래, 시가 있으며, 그의 이름은 모텔, 자동차, 장난감, 은행, 기업, 거리 등 무수한 사물에 붙여져 있다. 그리고 세계 전역에서 그의 비망록과 연설문, 전기(傳記)가 출간되고 있다. 이처럼 전 세계 사람들의 의식 속에 링컨이란 인물이 각인되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링컨을 둘러싼 신화와 인간 링컨 사이의 간극은 상당한데, 거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링컨의 열광주의자들이 ‘실제의’ 링컨을 연구하면서 신화를 분리시키기 시작한 것이 불과 30여 년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가 미국을 구하는 데 필요한 리더십 자질과 능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그러나 혼란과 급박함, 절망과 위기로 가득 찬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는 사태를 직시하고 대통령의 권한을 100퍼센트 활용함으로써 대통령의 권위와 리더십에 대한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나갔다. 오늘날의 리더들이 에이브러햄 링컨의 리더십 스타일과 철학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대의 기준으로 보더라도 링컨이 가장 뛰어난 리더, 나아가 전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리더라는 사실은 의심할 수 없다. 그는 아이아코카, 레이건, 부시 등 현대의 리더들을 능가한다. 링컨은 통치하는 비결을 실제로 알고 있었다. 그는 현대의 비즈니스 리더들이나 정치 지도자들에게 중요한 교훈을 제공하는 탁월한 리더이다. 이제부터 그의 리더십의 교훈과 원칙을 하나하나 짚어보자.


1부 사람에 대한 믿음

현장에서 사람들을 만나라
링컨 대통령은 4년의 재임 기간 대부분을 병사들을 직접 만나는데 보냈다. 링컨은 일선에 선 병사들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대업(大業)을 수행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육군성 전보실에 살다시피 했기 때문에 중요한 정보를 손쉽게 접해 신속하고도 시의적절한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그는 장군과 각료들을 그들의 집과 집무실과 전장에서 만나 그들에게 각종 지침을 제시했다. 링컨은 해군 조선소와 워싱턴 안팎의 요새들을 직접 둘러보고 신무기의 기능도 자세히 살폈다. 무장한 군대의 능력을 정확하게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군사 관련 시설을 직접 방문함으로써 그는 다른 사람들의 말에 의지하지 않고도 정확한 결정을 내리는데 필요한, 몸으로 체득한 지식을 갖게 되었다. 아울러 링컨은 병원을 방문해 일선 병사들을 위로하는 등 부상병들에게 각별한 애정을 보였다.

톰 피터스와 낸시 오스틴(Nancy Austin)은 『초우량기업을 향한 열정(A Passion For Excellence)』이라는 책에서 MBWA(Management By Walking Around; 순회 관리)를 “알기 쉬운 기술”이라고 규정했다. 이는 고객을 직접 만나고 공급업자를 직접 만나고 부하 직원들과 직접 만나는 것을 말한다. 이로써 혁신을 조장하고 조직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가치를 제시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가치를 경청하고, 조장하며, 가르치고, 강화하는 것이다. 이것이 리더십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러한 까닭에 MBWA는 리더십 기술이다. 휘하 사람들을 이끈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주의를 기울인다는 것이다. 주의를 기울이는 기술의 대가(大家)는 상징과 드라마를 활용하는 데 능숙할 뿐 아니라 뛰어난 이야기꾼이자 신화를 만들어내는 사람이기도 하다. 링컨은 사람들이야말로 정보의 주요한 원천이라는 사실과 그들과 가까이 있어야 훌륭한 리더가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현장을 찾아가서 직접 사람들의 말을 듣는 것은 성공하는 리더십의 가장 중요한 원칙이다.

현장을 직접 찾아가는 것처럼 링컨의 리더십 스타일을 대표하는 것은 없다. 그러나 자신이 백악관에서 나올 수 없는 경우에는 사람들이 자신을 ‘찾아오도록’ 했다. 링컨처럼 국민들이 쉽게 다가갔던 대통령은 없었다. 정부 공무원들, 직장인, 일반 시민들은 문자 그대로 링컨 대통령을 만나겠다는 희망을 품고 백악관 앞에 줄을 지어 있었다. 링컨은 거의 모든 사람을 만났고, 심지어 언제든 찾아오도록 격려까지 했다. 링컨은 1863년에 인디애나 주에 사는 한 남자에게 이런 답장을 보내기도 했다. “나를 찾아오는 사람을 못 만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나를 찾아온다면 당신을 만나 뵐 겁니다.” 이러한 링컨의 기조는 여론수렴뿐 아니라 다른 효과도 발휘했다. 리더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 사람들은 리더를 보다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신뢰하게 된다.

리더는 누구나 신뢰할 수 있는 새로운 정보를 끊임없이 찾아야 하고, 요구해야 한다. 지금 살펴보듯이 중요한 정보를 찾으려 부단히 노력한 덕분에 링컨은 시의적절하게 효과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일상의 비즈니스 환경에서 벗어나, 또는 자신의 집무실에서 나와 구성원들과 직접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리더에게 값지고 효과적인 것은 없다. 집무실 같은 공적인 장소를 벗어나면 긴장을 풀고 여유 있게 생각했던 것들을 스스럼없이 말하게 되는데, 이렇게 나온 의견이 더욱 진실어린 것일 수 있다. 링컨은 바로 이 점을 노렸다. 그는 각료 및 일반 국민들과 진솔하게 대화를 나누고자 했고 진실을 알고자 했다. 복잡한 업무 때문에 링컨처럼 사람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기가 어렵다고 말하는 리더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전쟁에서 승리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것과 같다. 그렇지 않은가?

신뢰로써 사람들의 마음을 붙들어라
에이브러햄 링컨은 공적으로든 개인적으로든, 모든 차원에서 강력한 협력관계를 맺음으로써 사람들의 신뢰와 존경을 받았다. 그는 휘하의 사람들이 주어진 상황에 어떻게 대응하는지 알고 싶어 했다. 그는 자신의 의지대로 업무를 처리하는 사람이 누구인가, 늑장을 부릴 것 같은 사람은 누구인가, 비상사태가 발생했을 때 의지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은 누구인가, 쾌활하면서 유능하고 헌신적인 사람은 누구인가, 강력한 윤리 의식과 가치 의식을 공유한 사람은 누구인가를 알고 싶었다. 또한 링컨은 자신이 주어진 상황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그가 진정 무엇을 원하고 요구하는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를 휘하 사람들이 알아주기 바랐다. 링컨의 의도를 이해하게 되면 그들은 링컨의 지도를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고, 따라서 일이 늦어지거나 별도의 조치를 취해야 하는 일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링컨은 사람들의 말을 경청했고, 사람들에게 관심을 기울였으며, 신뢰를 쌓았다. 그는 자신과 관련된 모든 사람들, 특히 각료와 군사령관들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힘썼다. 이를 위해 그는 자신에 대한 일부 사람들의 반감을 이겨내야 했다. 링컨 행정부의 국무장관인 수어드도 처음에는 링컨이 국가를 통치하고 지도할 만한 리더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다. 초기의 잡음과 그 모든 이견에도 불구하고 수어드와 링컨은 오래지 않아 돈독한 사이가 되었다. 저명한 변호사였던 스탠턴은 자신에 비해 무명에 가까운 링컨에게 모욕적인 언사를 퍼부었다. 이러한 모욕에도 불구하고 링컨은 그를 국방장관으로 임명했다. 그 업무에 스탠턴만한 인물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스탠턴은 장관직을 기꺼이 받아들였고, 머지않아 링컨의 판단이 정확했음을 입증했다. 스탠턴은 육군성을 철저하게 개혁해서 효율적인 부처로 탈바꿈시켰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링컨 역시 실패를 맛본 적이 있다. 일례로 “젊은 나폴레옹”으로 불렸던 매클렐런 장군과의 관계를 들 수 있다. 시간이 지나자 매클렐런 장군은 대통령이 자신을 간섭하려 든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는 링컨의 의도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몇 개월 동안 방어적인 자세를 견지한 매클렐런 장군은 급기야 아예 전혀 행동하지 않으려 했다. 따라서 링컨은 점점 더 많은 지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링컨의 ‘간섭’이 심해지자 매클렐런 장군은 거칠게 반응하여 마구잡이로 돌변했다. 결국 링컨은 매클렐런 장군을 총사령관에서 해임했고, 두 사람은 1864년 선거에서 대통령 자리를 놓고 싸우게 되었다. 매클렐런과의 악연으로 링컨은 어느 정도 힘들어했다. 하지만 그는 인간적인 고결함만은 지켰다. 아무리 힘든 상황에서도 돈독한 관계를 맺으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어드와 스탠턴처럼 훌륭한 동반자를 얻을 수 있었다.

링컨은 사람들이 특정 행동을 하는 동기는 물론, 스트레스를 받으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이 비겁하다고 여기는 행동을 매우 관대하게 보아주었다. 링컨은 사람들의 많은 실수를 포용함으로써 자연스럽게 휘하 사람들과 돈독한 관계를 맺었다. 물론 그는 돈독한 관계를 맺기 위해 전략적으로 용서를 사용하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마음씨가 너그럽고 사람들의 마음을 읽을 줄 알았기 때문에 사면을 단행했던 것이다. 중요한 것은 리더가 동정심이 많고 실수를 너그럽게 보아준다는 것을 알면 사람들은 리더를 보다 쉽게 신뢰한다는 것이다. 신뢰만큼 성공적인 인간관계에 필요한 요소는 없다. 리더들은 직원들 및 연계 조직과의 공고한 연대에 힘입어 리더의 입지가 강력해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들과의 불화에서 자신의 약점이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만일 집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 집이 설 수 없습니다.”라는 구절을 명심하라.


2부 고난 앞에서의 품위

최고의 정책은 정직과 성실이다
미국 철학자 윌리엄 호킹(Willian Ernest Hocking)은 “진실을 없애는 신화가 있는가 하면 진실을 더욱 값지게 만드는 신화도 있다.”라고 했다. 정직과 성실에 대한 링컨의 명성은 다소 부풀려진 부분이 있지만, 후자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살았던 인물에 대한 정보가 많을수록 그의 행적은 더욱 공고해진다. 이 경우 신화는 실제성을 띠게 된다. 링컨은 지금까지 알려진 것처럼 정직했고, 그 자질에 힘입어 위대한 리더가 되었다. 리더십이라는 건축물은 정직과 성실이 없으면 무너지고 만다. 정직과 성실은 모든 조직을 하나로 묶는 초석이다. 톰 피터스는 가장 공격적이고 성공적인 조직은 성실과 신뢰를 강조하는 조직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의심할 바 없이 정직은 항상 최고의 정책이었다.”라고 적고 있다. 베니스와 나누스는 “관리자들은 일을 올바르게 하고 리더들은 올바른 일을 한다.”고 말했다. 제임스 맥그리거 번즈는 “윤리를 떠나면 리더십은 단순한 관리 및 정치 기술로 전락하고 만다.”고 경고하고 있다.

링컨은 오랜 세월 동안 미국인들을 움직여왔던 가장 근본적인 두 가지 가치, 곧 ‘자유와 평등의 추구’를 지속적으로 공유하고 강조했다. 그의 성실은 곧 국가의 성실이었다. 링컨이 북부의 각료와 국민들에게 그토록 효과적으로 동기를 부여하고 헌신을 끌어낼 수 있었던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는 모든 이들의 기본적인 상식과 성실에 호소했다. 나아가 링컨은 자신이 말한 바를 몸으로 실천했다. 대통령이 되었을 때 그는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이 보다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고 그들을 세심하게 돌보았다. 그는 인내와 신뢰와 존중으로써 사람들이 성공의 계단을 오르도록 도왔다. 이렇게 하는 가운데, 링컨은 번즈가 말하는 ‘공유하는 리더’, 곧 조직의 정체성을 밝히고 가능한 한 원대한 목표와 높은 도덕적 수준에서 조직의 강점을 정의하여, 이를 미래로 구체화하는 자신의 역할을 인식하는 리더가 되었다.

링컨은 항상 올바른 일을 했고, 적어도 그렇게 하려고 애썼다. 그는 정직하지 않다고 여기는 사람은 상대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링컨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올바르게 행동하는 사람이라면 이유를 불문하고 지지하라. 다시 말하거니와 그 사람이 옳은 경우에는 그를 지지하되, 잘못된 길을 가면 헤어져라.” 링컨은 이유를 불문하고 정직하지 않은 사람이나 상황에 직면할 때마다 상대방을 경멸했고 분노를 터뜨렸다. 그가 말한 많은 일화 및 여러 가지 표현은 거짓말쟁이, 사기꾼, 협잡꾼을 겨냥한 것이다. 그는 웃으면서 등 뒤에 비수를 꽂는 사람을 식물의 몸통을 옭죄어 결국 죽게 만드는 덩굴에 비유하였다. 링컨은 이렇게 말했다. “덩굴은 어느 정도 인간과 습성이 비슷하다. 덩굴 식물은 다른 생명을 죽이면서 그렇지 않은 것처럼 교묘하게 꾸민다.”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정직한 에이브”라는 별명은 다소 과장되어 보이거나 심지어 조작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구성원들에게 항상 진실을 말하는 리더들은 때로 나쁜 소식을 전할 경우에도 진실하지 못한 말을 하는 것보다 훨씬 큰 존경과 지지를 받는다는 것이다. 중상모략을 일삼는 사람들이 없지는 않았지만 항상 성실과 정직을 지킨 링컨은 결국 성공했고 존경을 받았으며, 긍정적인 인상을 심어주었다. 그의 태생과 학력을 문제 삼는 사람들, 심지어 그의 정치성향을 문제 삼는 사람들도 그의 성실성은 의심하지 않았다. 링컨은 휘하 사람을 가르치든 축하하든 언제나 한결 같은 공정한 태도와 예의를 보여주었다. 그의 스타일을 따르는 리더들은 궁극적으로 열정적인 헌신을 이끌어내는 신뢰와 존경심을 얻게 될 것이다. 이러한 접근방식은 진실은 어떤 그룹에서도 통하는, 다양한 개성을 가진 사람들의 모든 상호작용에 필요한 공통분모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준다.

용기를 가지고 부당한 비난에 맞서라
링컨은 미국의 어느 대통령보다도 많은 중상모략과 비방을 당했고 증오의 대상이 되었다. 1860년 대선에서 링컨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링컨은 남부에서는 거의 지지를 받지 못해 대부분의 남부 주들은 투표용지에서 아예 링컨의 이름을 빼버릴 정도였다. 소수파 대통령이 당선된 것을 계기로 남부는 연방에서 탈퇴했고 곧이어 남북전쟁이 발발했다. 이로 인해 링컨에 대한 비난은 최고조에 달했다. 대다수의 국민은 어리숙해 보이는 서부 출신의 변호사가 어떻게 대통령에 당선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기괴하게 생긴 야비한 놈, 한때 장작을 쪼개더니 이제는 합중국을 쪼개고 있는 3류 변호사, 거칠고 상스러운 재담꾼, 독재자, 원숭이, 광대 등, 당시 언론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이름으로 링컨을 비웃었다. 링컨이 대통령에 취임한 후에도 무시무시하고 부당한 비난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대통령으로 재임하는 4년 동안, 링컨은 자신에 대한 모든 잔인한 적개심과 비난을 꿋꿋이 이겨냈다. 그는 비난을 이겨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극복해서 남북전쟁에서 승리했고 미국을 지켜냈다. 이 과정에서 그는 군사 제도를 재편했고, 대통령 권한을 확대했으며, 노예제도를 철폐했고, 미국인의 애국심을 새롭게 고취시켰다. 오늘날의 리더들도 부당한 비난을 극복한 링컨의 방법을 숙지해야 할 것이다. 링컨은 자신에게 쏟아진 비난을 다양하게 처리했다. 사실 그는 대부분의 비난을 무시하는 것으로 비난을 이겨냈다. 이 방법은 정치 지도자들에게 특히 유용할 것이다. 선거 과정에서 나오는 비난은 대부분 비열하고, 본질적으로 터무니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사실 링컨은 비난에 일일이 대응할 만큼 한가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설령 노골적인 비난으로 상심하고 낙담할 때조차도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보복하지 않았다.

그러나 링컨은 잘못된 공격으로 인해 국민들이 자신의 원칙을 오해할 경우에는 적극적으로 자신을 변호했다. 그리고 자신을 향한 공격이 대다수 사람들의 믿음과 상반될 경우에는 결코 물러서지 않았고 타협하지도 않았다. 1858년, 그는 노예제도에 대한 견해 때문에 일리노이 주 상원의원 경선에 나가지 못할 위기를 맞았다. 링컨-더글러스 논쟁이 벌어지기 전까지 더글러스는 유권자들의 상당한 지지를 받았지만 링컨은 문자 그대로 무시되었다. 공화당의 비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해 1988년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한 마이클 듀카키스(Michael Dukakis) 민주당 후보가 링컨의 1859년 연설을 기억했다면 아마 다르게 행동했을 것이다. 1년 전에 더글러스에게 패배한 사실을 떠올리면서 링컨은 이렇게 말했다. “바로 코앞에서 잘못된 이야기를 하는데도 그 자리에서 반박하지 않고 그냥 두면 절대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이제 알았네.”

오늘날의 리더들, 특히 정치 지도자들은 역경을 극복하고 성공을 거둔 링컨의 행적에서 중요한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리더는 모름지기 불굴의 의지를 가지고 헌신적으로 일하며 매사에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을 신뢰해야 한다. 나아가 거친 비난과 비판에 대응하는 일정한 스타일 및 관계를 개발해야 한다. 리더의 위치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리더는 수많은 비난과 비판을 듣게 마련이다. 리더로서 성공하느냐 여부는 비난에 자신이 어떠한 영향을 받는가에 달려 있다. 링컨처럼 행동하라. 사소한 비난일 경우에는 못 들은 척 그것을 무시하라. 하지만 전면적인 비난으로 자신에게 영향을 미칠 경우에는 그것을 되받아쳐라. 분노와 감정을 드러내는 편지를 써라. 하지만 비난에 얽매이지 마라. 나아가 항상 유머 감각을 유지함으로써 인생의 밝은 면을 잃지 마라. 고난 앞에서도 품위를 지켜라. 시시비비를 가려라. 그리고 용기를 가져라.


3부 비전에 대한 헌신

결단력을 가져라
링컨은 몇 가지 면에서 최초의 현대적 대통령으로 인정된다. 그는 노예를 해방시키고 미합중국이 분열되지 않게 한 것으로 유명하지만 대통령의 권위와 권한을 대폭 확대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처음부터 그렇게 할 의도는 아니었지만, 그는 대통령제를 실질적으로 개선했고 동시에 미국의 헌법을 대폭 수정했다. 링컨이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당시 미국은 합중국 체제의 위기를 맞고 있었다. 정부는 전복될 수 있었고 전쟁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절체절명의 상황이었다. 링컨은 권위와 리더십의 영역을 넓혀감으로써 이 시기를 극복했다. 미국은 전임 대통령도 해결하지 못했고 건국의 아버지들도 염두에 두지 않았던 남북전쟁을 겪게 되었다. 급박한 상황에 직면하여 링컨은 혁신적인 자세로 무장했고, 헌법에 대한 대통령 선서를 새롭게 해석함으로써 대통령의 권한 확대를 정당화했다. 혼란과 절망에 빠진 긴급한 현실은 오히려 링컨이 단호하게 행동하는 데 호기로 작용했다.

강제로 밀어붙여야 할 경우 링컨은 관련자들에게 매우 단호한 태도를 취했다. 물론 매우 까다로운 각료들도 있었다. 그중에서도 체이스 재무부장관이 가장 골칫거리였다. 대통령을 향한 그의 열망은 워싱턴 정가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이처럼 체이스가 내각에 있는 의도가 분명했지만, 링컨은 그를 계속 붙잡아두었다. 무엇보다도 체이스는 업무 능력이 출중했고, 링컨은 정부를 운영하고 전쟁비용을 조성하는 데 그만한 적임자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링컨은 업무 능력이 뛰어나다면 각료들이 아무리 마음을 상하게 하고 심기를 건드려도 너그럽게 넘어가는 편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체이스는 계속해서 링컨을 골치 아프게 만들었다. 대부분의 경우 링컨은 체이스의 의사에 맡긴 채 좀처럼 간섭하지 않았다. 그러나 링컨이 개입해 체이스의 결정을 무효로 만든 일이 두 번 있었는데, 이에 체이스는 항의의 표시로 사표를 제출했다. 그는 결국 1864년에 사임했다.

링컨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단호한 결정을 내리는 의지가 있었고 능력도 있었다. 또한 시급한 사안이라 생각할 때는 주저하지 않고 신속하게 행동했다. 링컨이 단호하지 않았다면 결과는 어떠했을까? 당시 일어난 혁신적인 변화는 그의 결단이 없었다면 실현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는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 그리고 삶의 방식을 변화시켰다. 나아가 노예제도를 철폐하고, 남부연합이 연방에서 이탈하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미국의 면모를 일신시켰다. 무엇보다도 그는 실제로 자신을 위대한 리더에 걸맞은 리더로 만들려고 노력했고, 실현했다. 그는 목표를 세웠고, 자신의 비전을 널리 전파했으며, 주어진 사명을 완수했다. 특히 의사결정이 단순하게 흑백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 오늘날의 변화무쌍하고 경쟁적인 비즈니스 환경에서는, 견고한 의사결정 리더십이 없으면 효과적인 비전과 고결한 목표도 무용지물이 된다.

효과적인 의사결정 구조가 없으면 조직이 어떻게 될 것인가 잠시 생각해보자.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고, 기회도 만들어지지 않는다. 구성원들은 목표 없이 우왕좌왕하며, 능동적인 사람들은 좌절감을 느끼고 무기력한 사람은 아무런 동기도 얻지 못할 것이다. 반면 단호한 리더가 있는 기업은 역동적이고 활기차다. 직원들은 스프링을 단 것처럼 목표를 가지고 활기차게 움직인다. 기회는 이런 기업을 외면하지 않고, 견고한 비전과 잘 다듬어진 목표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기업은 거의 항상 성공을 거둔다. 리더의 의사결정은 온몸에 혈액을 보내는 심장의 박동처럼 지속적이고 중단되지 않는 프로세스에 가깝다. 의사결정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조직이나 기업은 생명이 없는 사물처럼 되어버린다. 유능한 최고경영진의 의사결정처럼 기업이나 조직에 중요한 것은 없다. 링컨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 스스로 이끌게 하라
대통령직을 수행하면서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마다 링컨이 자신 있게 혼자 의사결정을 했다는 증거는 상당히 많다. 중요한 문제에 대해 조언자들에게 직접 의견을 구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그는 홀로 책임을 졌고, 행동을 촉구하는 국민의 요구에 부응했다. 그러나 국가의 중요한 행동방침을 정할 때 주도적으로 나서지 않을 때도 많았다. (그는 “솔직히 각종 사안을 통제하기보다는 사안들에 휘둘려왔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링컨이 남북전쟁이라는 위험한 파도를 헤치면서 능수능란하게 국가라는 배를 조종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는 때때로 각료들의 지도를 받고 있다는 인상을 주면서 그들을 이끌곤 했다. 바로 이러한 자세가 링컨의 리더십 자질을 특징짓는다. 이러한 태도는 노자의 가르침과 상통한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이렇게 밝혔다. “지도자의 믿음이 부족하면 백성의 신망을 얻지 못하니, 훌륭한 군주는 삼가 그 말을 아껴, 공이 이루어지고 일이 완수되어도, 백성들은 모두 말하기를 ‘저절로 그리되었다’ 한다.”

링컨은 사람들의 의견을 귀담아 듣고 거리낌 없이 사람들의 가르침을 받는 자질을 갖고 있었다. 나아가 리더십에 없어서는 안 될 개방적인 자세와 유연성이 있었다. 그는 휘하 사람들의 제안과 권고를 수시로 수렴했다. 그들이 합리적이고 자신의 아이디어에 부합하는 행동을 하면, 링컨은 그들의 지식과 아이디어를 계속 발전시키도록 독려했다. 만약 제안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링컨은 휘하 사람들을 적절한 방향으로 인도했다. 그러나 그럴 경우에도 명령을 내리고 지시하기보다는 암묵적으로 말하고 힌트를 주거나 제안하는 방식을 택했다. 통찰력과 치밀함으로 링컨이 국민을 지도한 사실은 그동안 간과된 것이 사실이다. 그의 행동은 너무나도 순진해 보여서 당대 사람들은 링컨이 알게 모르게 사안들을 변화시킨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스스로를 이끌게 함으로써 지도하는’ 전략을 구사하면서 링컨은 변함없는 신뢰를 보냈고, 설령 일이 잘못되었다 해도 자신이 모든 책임을 감수했다. 이는 정직, 성실 및 인간 존엄성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링컨의 신념에서 나온 것이다. 각료들은 링컨이 아닌 자신이 스스로를 이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자신의 임무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또한 소기의 성과를 달성하지 못하더라도 링컨이 자신을 책망하지 않으리라는 점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혁신을 추구하고 위험을 감수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링컨은 임무를 훌륭히 완수한 사람에게는 입이 마르도록 칭찬하고 보상을 톡톡히 해주었다. 이와 반대로 실패에 대해서는 자신이 그 책임을 고스란히 졌다. 긍정적인 결과에 칭찬을 아끼지 않고 뛰어난 성과를 실현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주면, 구성원들의 성과는 올라가고 리더들도 여유를 찾을 수 있다. 물론 중요한 것은 리더들이 구성원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지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링컨은 자신감에 넘쳤고 자신의 능력을 신뢰했다. 뿐만 아니라 불안에 떨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위협을 느끼지 않았다. 그래서 열린 마음과 유연한 자세를 지킬 수 있었고, 승리의 모든 영광을 기꺼이 다른 사람들에게 돌릴 수 있었다. 링컨은 휘하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링컨을 지도하고 있다는 인상을 심어주었다. 실제로 그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지도하도록 의견을 수렴했지만, 그들이 어떻게 일을 수행하는지를 주시하며 항상 보이지 않게 그들을 관리했다. 그들의 아이디어와 행동이 자신의 방향과 부합하고, 방법이 타당하다는 생각이 들면 링컨은 그들이 성과를 내도록 끊임없이 독려했다. 그러나 그들이 올바른 경로에서 벗어나려하면 링컨은 보이지 않게 그들을 제자리로 돌려놓곤 했다. 그리고 목적을 이루기 위해 사용하는 수단이 부적절한 경우에는 논의를 하고, 그래도 문제가 있으면 대통령의 권한을 행사해 제지했다. 그러나 링컨의 최종 목표는 어디까지나 사람들이 “우리의 힘으로 이 일을 성취했다.”라고 말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4부 열정을 공유하는 커뮤니케이션

대중 연설의 달인이 되어라
로널드 레이건 미국 전 대통령은 자타가 인정하는 뛰어난 커뮤니케이터였다. 그러나 수사(修辭)를 통해 국민을 설득하는 능력에서는 레이건도 링컨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널리 알려졌듯이 링컨은 자신의 연설문을 직접 작성했는데, 그중 대다수가 시적이고 미적인 표현의 걸작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는 청중의 감정을 불러내는 능력을 가진 대중 연설가였다. 뿐만 아니라 더글러스와의 논쟁 기록에서 입증되듯이 미국 최고의 즉흥 연사로도 손꼽히고 있다. 그는 노예해방령을 직접 작성했으며, 자신의 뜻을 이해시키기 위해 기꺼이 수천통의 편지를 썼다.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그의 노력은 성경보다 두꺼운 그의 선집(選集)이 입증해준다. 당대 사람들에게는 링컨의 연설을 직접 듣는 것처럼 생생한 경험도 없었다. 널리 퍼지는 그의 목소리는 뛰어난 자산이었다. 실내에 들어오지 못한 많은 청중이 실외에서 그의 연설을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링컨은 누구보다도 대중 연설을 철저하게 준비했다. 연설문을 작성할 때면 그는 언제나 문구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읽어보곤 했다. 링컨의 주변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이렇게 말했다. “그분은 신문기사가 나가거나 연단에 오를 때까지 완벽하게 원고를 끝내는 것 외에는 다른 것은 어떤 것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몇 시간 때로는 몇 날 몇 주 동안 연설 원고만을 다듬곤 했다. 대부분의 유명한 연설들은 링컨이 직접 철저하게 연구하고 분석하고 연습해서 작성한 것들이다. 링컨은 종종 연설문을 사전에 기자들에게 배포하곤 했는데, 1858년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연설했던 유명한 ‘분쟁하는 집’이라는 연설도 그러했다. 비서인 니콜레이와 헤이는 “그의 평생에 가장 세심하게 준비된 연설로, 그는 단어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를 시험해보았다.”고 전했다. 사전에 철저히 준비하는 자세는 톡톡히 보상 받았다. 많은 공화당원들은 그 연설을 공화당의 정강을 웅변적으로 보여준 것이라며 환호했다.

그러나 대통령 유세 기간과 대통령 재임 시절에는 대중 연설 횟수를 대폭 줄였고, 즉흥 연설은 더욱 자제했다. 1860년 초선 선거운동 당시의 전략은 침묵을 지키는 것이었다. 그는 비교적 온건한 중도성향의 후보자인 반면 민주당은 북부 지지자와 남부 지지자로 분열되어 있었다. 링컨 진영은 연설을 하지 않으면 지지자 일부가 떨어져 나가더라도 승리할 수 있으리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얼마 후 그는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현재의 상태에서는 어떤 연설도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제가 침묵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링컨의 침묵은 엄청난 승리를 가져오는 것으로 보상 받았다. 대통령이 된 후에도 그는 대중 연설에 대한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많은 대통령들과 마찬가지로 링컨은 오해의 여지가 있거나 언론이 곡해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자신의 발언을 자세히 검토했다.

“중요한 것은 말하는 내용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말하는가 하는 것이다.”라는 말은 링컨의 커뮤니케이션 스타일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균형 잡힌 사고와 스스로 터득한 지혜, 기지가 담긴 교훈, 그리고 성실함을 하나로 통합한 그의 스타일은 커뮤니케이터의 전형처럼 되었다. 특히 쉽게 오해될 수 있는 복잡한 메시지를 보내야 할 때, 링컨의 간단하면서도 직설적인 접근방식을 체화하는 것이 좋다. 말하는 사람이 정직하고 신실하며 명확하면 메시지는 보다 쉽게 ‘전달된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의미하고자 하는 것을 말해라. 그러면 당신의 말이 그대로 의미가 될 것이다. 링컨은 사람들에게 한결같고 확실한 태도로 말함으로써 신뢰를 쌓았다. 이때 그는 단어 말고 다른 것에도 의지했다. 그의 행동은 자신의 한 말의 거울이었다. 모호하고 복잡한 메시지를 받는 것처럼 구성원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없다. 메모가 되었든 토론이 되었든 전화가 되었든, 주제를 자신 있고 명확하게 말해야 효과적으로 전달된다.

끊임없이 비전을 전파하라
사전에서 “리더”를 찾아보면 가장 먼저 “식물이 살아갈 수 있도록 영양을 공급하는 식물의 가장 중요한 줄기”라는 정의가 나온다. 이 정의 그대로 기업의 비전을 체화하여 커뮤니케이션하는 리더의 능력에 따라 기업은 발전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경영자와 감독이 직원들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에 따라 부서 및 그 상위 조직, 나아가 기업 전체의 건강은 천양지차로 달라진다. 이 모든 것은 뛰어난 리더와 평범한 관리자를 구별하는 ‘비전’이라는 말로 귀결된다. 톰 피터스와 오스틴은 “비전을 널리 전파하라.”고 주장했다. 톰 피터스는 효과적인 비전이 구성원들을 고무시킨다고 보았다. 비전은 “명확하고, 도전적이며 탁월한 것을 추구한다.” 뿐만 아니라 이치에 맞고 시간이라는 시험도 이겨낼 수 있다. 비전은 견고하면서도 유연하다. 효과적인 비전에 힘입어 구성원들은 능력을 갖게 되고, 과거에 뿌리를 두면서도 동시에 미래를 준비한다.

주지하다시피 남북전쟁 내내 링컨은 연설과 기고문, 그리고 대화를 통해 미국 역사상 유례없을 정도로 미국의 비전을 널리 알렸다. 링컨은 당시 미국에 가장 필요한 것을 정확히 제시했다. 미국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명확하고 간결하게 진술하고, 무시무시한 내전에서 북군의 무력 행동을 정당화했다. 결과적으로 링컨은 풀뿌리 리더십을 보여준 것이다. 그는 가는 곳마다, 또한 기회 있을 때마다 미국의 토대가 된 기본 원칙을 사람들에게 확인시키고 거듭 주장했다. 그의 비전은 단순했다. 링컨의 비전은 애국적이고 경건한 것이었으며 성실, 가치 및 높은 이상으로 충만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으로 그의 비전은 미국인들의 심금을 울렸다. 비전처럼 일반 국민들과 그와의 유대감을 잘 드러내는 것은 없었다.

링컨은 자신만의 뛰어난 현장 리더십 스타일을 실행해서 자신의 비전을 널리 알리고 그것이 실행되는가를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라디오나 텔레비전 등 대중매체가 널리 보급되지 않았던 시대에 그것은 엄청난 효과를 발휘했다. 1864년 선거가 있던 해에 링컨은 병사들을 격려하고 국가와 대통령이 결코 그들을 잊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리고, 그들이 싸우고 있는 대의의 중요성을 상기시키기 위해 직접 전장에 가서 병사들을 만났다. 군인들은 링컨을 존경했고 신뢰했으며, 그가 가는 곳마다 그를 큰소리로 환호했다. 일반적으로 매우 소수의 사람만이 현직에 있는 대통령과 만날 수 있는데, 예외적으로 북군 병사들은 대통령과 이 같은 연대를 누렸다. 이는 링컨이 백악관의 ‘상아탑’에서 나와 전선으로 향하는 군인들을 개인적으로 찾아보던 1861년 초에 시작되었다.

4년간 남북전쟁 동안 링컨은 비전에 담긴 의미가 퇴색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비전을 계속해서 반복했고, 새롭게 다듬었다. 그는 늘 새롭게 비전을 되풀이하는 과정을 통해 엄청난 동기를 부여하곤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는 약해지고 인센티브는 줄어든다. 따라서 리더들은 지속적으로 과정을 새롭게 해야 한다. 노예제도에 대한 투쟁은 이미 오래된 이슈였고, 남북전쟁은 수십 년간 지속되어온 갈등의 정점일 뿐이었다. 링컨은 이처럼 낡은 가치를 새롭게 일신했다. 링컨은 이러한 사명에 전략적으로 전념했다. 그는 독립선언서와 헌법을 부활시켰으며, 독립전쟁 이래로 보이지 않았던 자긍심과 애국주의를 되살렸다. 링컨은 미국주의에 깃든 낡은 가치를 부활시켰고, 모든 리더들이 구성원들에게 자신의 조직이 처음에 어떻게 만들어 졌는가를 상기시키듯이 모든 사람들에게 미국이 처음에 어떤 정신으로 만들어졌는가를 상기시켰다.

링컨에 의해 부활한 미국의 비전은 군사력을 보강해 야전에 군대를 보내는 것이나 병사들에게 총을 비롯한 보급품을 제공하는 것보다도 훨씬 강력했다. 그의 연설은 모든 사람들이 헌신적이고 역동적으로 행동하도록 강제하는 힘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문제가 있을 때 돈이나 인력을 투자하는 것보다도 훨씬 강력했다. 자신이 원한 대로 국가의 비전을 명확하게 규정하고, 또한 국민들로 하여금 이러한 사실을 인식하고 헌신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게 함으로써 링컨은 각각의 사람들이 갖고 있는 엄청난 에너지를 방출시켰다. 링컨은 모든 리더들이 반드시 해야 하는 것, 즉 비전을 반복해서 새롭게 함으로써 구성원들이 각자의 능력과 에너지를 쏟아내도록 할 줄 알았다.


맺음말

링컨의 리더십 능력에 깃든 진정한 자질은 아직 간과되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러나 상당 기간 동안 링컨의 이너서클에 속해 있던 몇 명의 핵심 인물이 있는데, 이들은 그의 리더십 기술의 깊이를 이해했고 높이 평가했다. 수어드 국무장관은 링컨에게 깃든 “최고 위치에 있는 사람의 힘과 에너지”를 간파했고, 스탠턴 국방장관은 링컨이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되었다”라는 사실을 알았다. 심지어 대통령 및 행정부와 마찰을 겪었던 호레이스 그릴리까지도 링컨의 역량을 대단히 높이 평가했다. 호레이스 그릴리를 비롯한 링컨 당대의 사람들은 그의 진정한 능력을 알았다. 그러나 암살 이후에 링컨은 순교자가 되었고 앞 다투어 ‘링컨 신화’가 만들어졌다. 그 결과, 링컨의 진정한 리더십 능력은 간과되어 시간이 지날수록 흐릿한 존재로만 남게 되었다.

미국 역사상 가장 어려운 시기 내내 거의 혼자 힘으로 미국인이 가지고 있는 정부 개념을 수호하고 보존한 사람이 바로 링컨이었다. 그가 리더가 아니었다면 남부연합의 연방 탈퇴로 미국은 노예제도가 있는 나라와 없는 나라로 분열될 수도 있었다. 그는 그의 시대에서 1세기 이상 앞서서 리더의 능력과 직관을 가지고 자신에게 주어진 과업을 성취했다. 진정한 리더십은 매일매일 조용히, 그리고 섬세하게 영향을 미침으로써, 또한 구성원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을 직접 만남으로써 보다 쉽게 실현된다는 사실을 링컨은 알고 있었다. 그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을 동일한 예의와 존경을 가지고 대했다. 대통령으로서의 링컨의 자세 및 행동은 본질적으로 예의와 도덕을 지키는 인간관계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링컨이야말로 리더십의 정수인 것이다.
본 도서요약본은 원본 도서의 주요 내용을 5%정도로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원본 도서에는 나머지 95%의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보다 많은 정보와 내용은 원본 도서를 참조하시기 바라며, 본 도서요약본이 좋은 책을 고르는 길잡이가 될 수 있기 바랍니다.
[삼손]요약
[조직을 죽이고 살리는 - 리더의 언어]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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